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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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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원
교수경종민 |
전요새 TV나 신문의 광고를 보면 구매력 집단에서 장년 남자 그룹이 빠져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편, 주로 10대·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음반, 오락, 의상, 가전, 레저, 컴퓨터, 통신 등
각 분야에서 계속 신나게 성장하는 것 같다.
그런데 아마 한국인의 모습 중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희망찬 부분을 꼽으라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성인 남자들,
즉 이 땅의 아버지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모습이 60년대 이후의 한국의 산업과 경제를 이끌어 온 견인차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한국인 40대 남자의 사망률이 세계 최고라는 어두운 그늘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의 피로가 몸의 한계를 넘는 살벌한 직장의 중압감과 도전을 이기기 위해 60, 70년대 직장인들은 가정에서의 휴식과
보람대신 회식, 단합대회, 폭탄주 등의 독특한 근무외 시간의 직장문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 들어서서
퇴근후 직장문화는 사뭇 바뀌었으나, 아직도 가정에서의 가장(家長)의 자리는 확실치 않은 것 같다.
구조조정과 자금압박, 정년단축 등으로 가장이 바깥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충격을 받아주고 풀어줄 만큼 가정이 성숙해 있지 않은 것이다.
가장이 버려둔 가정과 자녀들의 교육은 입시과열과 사학만연으로 인해 아이들을 키우고 세워주는 대신 다그치고 몰아쳐
아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그들 나름의 도피처를 찾게 했다. 그것이 게임방, 인터넷 채팅과 음란물 탐닉, 10대의 반항과 타락으로 나타나고,
가정은 안식처의 기능대신 풀어야 할 문제가 계속 쌓이지만 불거질 때까지는 서로 대충 쉬쉬하고 넘어가는 긴장된 숙소가 되어버렸다.
일·가정 두 마리 토끼
여기서 우리는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쳐버린 것이 오늘 이 땅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열심히 일만하고 돈을 벌어다 주었지만 가정의 골치 아픈 문제와는 일정 거리를 두고
살아온 가장의 패러다임은 이제 바뀌어야 하며 사실 지금도 이미 바뀌고 있는 중이라고 봐야 한다.
우선, 가정과 직장이 가장의 시간을 두고 서로 충돌하는 평면적 대립관계에서, 직장인인 동시에 가장이라는 한 인격체를 서로
다른 면에서 보완하며 세워주는 시너지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러한 시너지 관계는 너무 가치가 큰 것이어서 꼭 이루어지도록 끝까지 노력할 가치가 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성과를 이루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을 넓고 긴 안목으로 계획하고 지난 실적을
다각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동반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일 하더라도 결과는 실패일 수 있다.
일의 계획과 평가에는 일의 수행시보다 더 폭넓은 안목과 사고가 필요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마음의 여유와 지혜가 필요하다.
열심의 동기 형태가 중요
일의 열심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열심'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열심의 동기나 형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세가지 잘못된 동기를 살펴보자.
첫째는 이기심이다.
주변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치 않고 의식 혹은 무의식중에 자기 자신의 급박한 입장이나 이익만을 위해 열심을
부리다 보면 결국 무리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교수 초년병시절 빨리 연구기반과 성과를 얻으려는 생각에 심신으로
무리하며 좌충우돌했고, 학생들에 대한 여유 있는 배려가 부족한 채 성과중심, 논문편수 늘리는 재미로 마구 달렸던 것이
생각날 때마다 반성의 마음을 되새기게 된다. 그때 좀더 여유가 있고 성숙했더라면 논문편수는 줄었을지 모르나 다각적으로
훨씬 더 풍성한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둘째는 비교심리로서 다른 사람과 자꾸 비교를 하며 채찍질을 하다보면 자기 능력 이상으로 무리를 하게 되는 현상이다.
비전과 포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기의 능력과 현 여건을 냉철히 고려한 현실적인 계획과 구현방법이 따라주어야 한다.
자기가 부족한 영역에서 무리한 경쟁을 시도하여 망하는 것은 어리석다. 한 영역에서의 포기는, 다른 적성맞고 유망한 영역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일중독 현상.
과거 어느 시점에 필자도 아내로부터 일중독자(workaholic)라는 괴로운 말을 듣게 되었다. 그 말에 반발하면서도 일리가 있는 말로
인정케 되었다. 지금은 바쁜 중에도 가급적 정신을 차린 상태로 바쁘도록 애쓰고, 가정의 의미 있는 일이나 행사에는 우러나오는
진실한 마음으로 참여하고, 이따금 여행, 외식, 피크닉 등을 주도하려고 노력한 결과 불명예스런 '중독자' 딱지는 어느정도 떼지 않았나 싶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힘들고 외롭게 일과 씨름을 하며 그에 대한 보상은 물론, 결핍된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어떻게든 메꿔지고
이해될 것으로 막연히 믿고 살아왔다. 그러나, 오늘의 아버지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앞으로 한 가정과 사회와 나라와 세계를
이끌어 갈 젊은 세대와 그들이 자라나는 가정에 관심을 쏟아야 하고, 가정과 일의 시너지를 느끼는 점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정되고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가정은 가장이 직장의 일을 희생함으로써 직장에서 몰락하도록 가장으로부터 무리한 시간의 요구를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아버지가 정작 가까이 다가오면 가정은 시간요구 차원에서 가장인 아버지와 충돌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성공하는 아버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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